동식물 이야기

죽은 나무가 만드는 생태공간

Egaldudu 2025. 4. 16. 10:28

유럽 산림생태학이 바라보는 생물서식목의 가치

 

픽사베이 이미지

생물서식목

숲에서 죽은 나무는 생명이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의 기반이 된다. 유럽의 산림생태학자들은 이렇게 생태계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죽은 나무를 생물서식목(Biotopholz)이라 부른다.

 

말라 죽은 채로 서 있거나 쓰러져 땅에 놓인 형태 모두가 여기에 포함된다. 형태가 어떻든 이 구조물들은 수많은 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태공간을 제공한다.

 

숲의 생태공간

쓰러진 줄기, 부러진 가지, 자연적으로 떨어진 나무 조각들. 이런 것들이야말로 다양한 생물이 숲에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환경이 된다. 생물서식목 주변에는 곰팡이와 이끼, 지의류가 자라며, 곤충과 조류, 포유류가 이 공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독일에서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2,500종이 넘는 곰팡이·이끼·지의류, 1,700종 이상의 딱정벌레, 수천 종의 모기·파리··말벌, 60종이 넘는 조류, 23종의 박쥐, 그리고 나무담비, 겨울잠쥐, 야생고양이 같은 포유류가 생물서식목에서 직접적인 혜택을 얻는다.

 

다층적 활용

이 죽은 나무는 하나의 구조물이면서도 동시에 다층적인 서식 환경이다. 나무 껍질 틈은 박쥐의 은신처가 되고, 곤충은 내부에 알을 낳는다. 부패한 조직을 분해하는 곰팡이는 그 과정을 통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조류는 죽은 나무에서 먹이를 찾고, 때로는 텅 빈 줄기를 둥지로 사용한다. 나무 아래에 생긴 그늘진 공간은 포유류가 숨거나 지나가는 통로로 쓰인다.

 

이처럼 단일한 구조에 수많은 생물군이 관여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시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이 공간을 점유한다.

 

관리의 전환

유럽의 산림정책에서는 이러한 생물서식목을 생물다양성 보전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독일자연보호연합(NABU)과 연방자연보호청(BfN)은 경제림에서도 일정량의 죽은 나무를 남기는 방식을 권고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고사목을 인위적으로 보전하는 관리 방안도 도입되고 있다.

 

죽은 나무를 없애는 것이 깔끔한 숲을 만든다고 믿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 속에 숨은 생명구조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숲을 구성하는 것은 살아 있는 나무만이 아니다. 숲의 건강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생태공간, 즉 죽은 나무 속에 깃든 생물의 다양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