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좋은 박테리아, 나쁜 박테리아,

Egaldudu 2025. 2. 15. 01:42

모든 박테리아가 사람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니지요

 

픽사베이 이미지

 

인간에게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몇몇 위험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제목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페스트하며 콜레라, 디프테리아, 탄저병, 매독 등은 모두 그런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하는 세균성 감염증이다.

 

페스트의 경우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감소시켰을 만큼 인류에게 치명적이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콜레라는 전 세계에 창궐하던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이러한 질병들은 이제 예방 가능해졌으며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되었다. 사실 박테리아에 대한 공포 그 자체는 페니실린 같은 여러 항생제의 발견과 더불어 이미 오래 전에 그 위력을 상실했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에게 세균성 질병을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박테리아들 대부분은 인간을 공격하는데 별 관심이 없거나 유산균처럼 아예 우호적이기까지 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의 장 내에는 소화를 도와주는 많은 유익한 세균들이 서식한다. 락토바실러스, 아킬로박터, 클로스트리디움, 엔테로코커스, 페르미쿠티스 등 어딘가 꽃 이름을 연상시키는 이 박테리아들은 인간에게 무해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런 류의 장내 세균들은 음식물의 소화를 돕고, 일부 비타민을 합성하며, 면역체계 증진에 기여한다. 이것들 외에도 인간의 장에는 약 400종 이상의 박테리아가 서식하며 그 수는 수십억에 이른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박테리아는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장내 박테리아는 뇌 기능과 기분 조절에도 관여하며, 어떤 박테리아는 스트레스 해소와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것은 일부 박테리아의 경우 단순한 미생물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삶에 보다 근원적으로 직결되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테리아가 수행하는 분해 및 처리 작업은 인간의 장뿐만 아니라 외부의 자연 환경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박테리아는 특히 토양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이 그것을 영양소로 재활용하게 한다. 뿌리혹박테리아 같은 경우 질소 고정을 통해 식물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박테리아는 그런 방식으로 지구 생태계의 균형 유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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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아는 그 기능 만큼이나 종류, 형태 면에서도 다양하다. 생긴 모양을 기준으로  크게 콕시(Cocci, 둥근 모양의 구균)와 바실리(Bacilli, 막대 모양의 간상균), 스피릴룸(Spirillum, 나선 모양의 나선균) 등으로 분류되고, 다시 그 결합 형태에 따라서 단구균, 쌍구균 등 다양한 형태로 세분된다. 그리고 생존 방식에 따라서는 산소를 필요로 하는 호기성 박테리아와 산소 없이도 생존이 가능한 혐기성 박테리아로 분류된다. 기준점이 뭐냐에 따라서 박테리아는 상당히 크고 복잡한 분류체계로 세분된다.  

 

그렇다면 박테리아가 이렇게 다양한 형상과 기능을 갖고 오랜 시간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적응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박테리아의 적응력에는 실로 놀라운 구석이 있다. 박테리아는 사해 같은 소금 바다나 뜨거운 간헐천, 바위 틈, 또는 지하 수백 미터 깊이에서도 생존한다.

 

사실 지구가 박테리아의 천국이었던 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박테리아는 약 35억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초기 생명체 중 하나였다. 시간이 흐르며 박테리아는 다양한 환경 조건에 적응하며 그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그런 탁월한 적응력과 관련하여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불편한 진실도 있다. 그건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항생제 내성균, 이른바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이다. 예전에는 약사들이 테라마이신으로 대표되는 항생제를 아주 쉽게 처방해주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테라마이신 주세요.”라고 하면 어디가 아프시냐며 간단히 몇 마디 물어보고 약을 내주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병원약으로는 여전히 항생제가 많이 처방되고 있는 것 같다. 더 좋은 대안이 없어서 그런건지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체 가능한 다양한 신약이 많이 개발되어 항생제 남용으로 우리 몸 안에 있는 유익한 장내 세균들이 고통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박테리아는 질병을 유발하는 유해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박테리아의 다양한 역할과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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