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유아기 기억은 왜 사라질까?
많은 사람들이 아기 때의 기억을 거의 떠올리지 못한다. 2~3세 이전의 일은 물론이고 4~5세 때의 기억도 흐릿한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학계에서는 이를 ‘유아기 기억상실(Infantile Amnesia)’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단지 아기들이 멍하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뇌 발달과 인지 기능의 복잡한 작용에서 비롯된다.
2. 뇌 발달과 기억 형성의 관계
해마(hippocampus)는 뇌에서 장기 기억을 형성하고 저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구조다. 특히 서사적 기억(narrative memory),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배열하고 이야기로 구조화하는 기억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하지만 출생직후의 해마는 아직 온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생후 3~4세까지는 해마 내에서 신경세포의 활발한 생성과 회로 재구성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뇌 발달 과정은 기존에 형성된 기억 회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안정적인 기억 고정을 방해한다.
또한,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역시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기억의 선택적 저장이나 정리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해마는 생후 1~2년 무렵부터 기능을 시작하지만, 관련 회로들이 안정적으로 성숙하는 시점은 만 6~7세 이후로 보고되고 있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 형성된 기억이 일시적으로 저장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뇌가 구조적으로 계속 변화하면서 과거의 신호연결이 '덮어쓰기(overwriting)'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초기 기억은 사라지게 된다.
3. 인지 발달의 영향
기억은 단순히 뇌에 저장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사건을 배열하는 능력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유아들은 아직 달력이나 연도, 시간의 흐름 개념이 없기 때문에, 사건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어렵다. 예를 들어 ‘생일 파티 → 선물 받음 → 기분 좋음’ 같은 서사 구조를 만들기엔 사고력이 아직 부족하다.
또한, 언어 표현력 역시 중요한 요소다.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건을 말로 설명하는 활동은 기억을 더욱 강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단어도 부족하고 문장 구성도 서툴기 때문에 아무리 중요한 경험이라도 이를 언어로 정리하지 못하면 쉽게 잊히게 된다.
4. 유아 기억은 전혀 없는 걸까?
재미있는 사실은 유아기의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기억은 감정적 자극이나 사진·영상 같은 반복 자극을 통해 간접적으로 남을 수 있다. 또한 무의식적인 반응이나 감정은 뚜렷한 기억 없이도 남아, 성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에서 익숙함이나 기시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5. 마무리하며: 기억을 남기려면
유아기 기억상실은 결함이 아니라 뇌 성장과 인간 발달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은 분명히 우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보다 오래 간직하려면 말로 풀어 설명해 주는 것, 일정을 반복해 말해주는 것, 그림이나 사진으로 시각화해 주는 것 등이 도움이 된다. 이러한 활동은 해마의 발달과 인지 구조 형성에 기여하며, 아이가 더 오래 기억을 간직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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