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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전, 통화 질서는 무너져 있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은 국제 경제 질서를 붕괴시켰다. 각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관세를 높였고, 자국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했다. 무역은 얼어붙었고, 금본위제는 사실상 작동을 멈췄다. 세계는 공통의 기준 없이 자국 중심으로 통화와 무역을 운용하는 극단적 보호주의 시대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혼란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국제질서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서서히 공유되었다. 전후 경제회복을 위한 안정된 금융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렇게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는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기획되기 시작했다.
브레튼우즈에서 탄생한 새로운 체제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 주의 휴양지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서 44개국 대표들이 모여 국제통화체제를 논의했다. 이 회의의 결과로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탄생했다. 중심에는 미국 달러가 있었다.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하고, 나머지 국가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되도록 하는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 형태였다. 이로써 달러는 금과 직접 연결된 유일한 통화이자, 세계 기축통화가 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고정환율을 유지하면서도,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각국이 일정 범위 내에서 환율조정을 허용받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지나친 불안정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국제부흥개발은행(오늘날의 세계은행)의 설립이었다. 전후 복구와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자금공급이 가능해졌다.
이 체제는 미국의 경제력과 금 보유량을 기반으로 작동했다. 미국이 중심이 된 이유는 단순히 회의의 개최국이어서가 아니라, 당시 전 세계 금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달러 체제의 균열과 해체
브레튼우즈 체제는 초기에는 성공적이었다. 고정된 환율과 달러 중심의 무역구조는 세계 경제 재건에 기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이 빠르게 성장하고, 미국은 점차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를 겪게 되었다. 세계 각국은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 달러가 금으로 교환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결국 1971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Nixon Shock)였다. 이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의미했다. 1973년 이후 세계는 고정환율제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전환하였다.
그 이후의 세계
브레튼우즈 체제가 끝난 뒤에도 달러의 위상은 유지되었다. 금과의 연결고리는 사라졌지만 달러는 여전히 국제금융의 중심에 있다. IMF와 세계은행은 여전히 존재하며, 국제 경제 조정의 주요 기구로 작동하고 있다.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고정된 통화질서 안에 있지 않지만, 브레튼우즈 체제가 남긴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단순한 환율제도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 질서를 가능하게 만든 설계도였고, 달러 패권이 시작된 근거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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