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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튜즈데이와 블랙먼데이, 주식시장을 뒤흔든 두 날

Egaldudu 2025. 6. 22. 10:05

검은 요일로 기억된 두 날

주식시장에는 검은 요일이라 불리는 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두 날은 지금도 경제사 속 결정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1929년의 블랙튜즈데이(Black Tuesday) 1987년의 블랙먼데이(Black Monday). 둘은 시기적으로 반세기 이상 떨어져 있지만, 모두 극심한 공포와 혼란을 불러온 날들이었으며, 시장과 제도가 이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묻는 계기가 되었다.

 

1. 블랙튜즈데이

1929 10 29,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급락했다. 단 하루 동안 1600만 주 이상이 거래되었고, 투자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이 날은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시작점으로 간주되며, 이후 실물경제 전반이 붕괴하고 실업률이 급증하는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블랙튜즈데이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기술 발전과 소비 확대로 성장 일변도의 국면을 걷고 있었고, 주식은 필수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마진 거래와 투기과열로 버블이 형성되었고, 작은 불안이 결국 시장 전체의 붕괴를 불러왔다.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것은 10월 중순부터였다. 24일에는 블랙서즈데이(Black Thursday)라 불리는 전조가 있었고, 28일에도 낙폭이 컸지만 사람들은 아직 회복을 기대했다. 그러나 29일 화요일, 매도 주문은 쏟아졌고 매수자는 사라졌다. 이때의 충격은 금융권을 넘어 실물경제로 확산되었다.

 

은행은 연쇄적으로 도산했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였다. 미국 국민의 4분의 1이 실업자가 되었고, 농민들은 땅을 잃었다. 신용은 붕괴했고, 소비는 얼어붙었다. 미국만의 위기는 아니었다. 유럽 경제도 동시에 침체에 빠졌고, 세계는 10년에 가까운 불황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블랙튜즈데이는 단순한 시장 실패가 아니었다. 당시 지배적이던 자유방임주의의 한계를 드러냈고, 이후 케인스주의(Keynesian economics)와 뉴딜정책 같은 적극적 개입의 논거가 되었다. 단 하루의 폭락이 경제 정책 전반의 대전환으로 이어진 것이다.

 

2. 블랙먼데이

1987 10 19일 월요일, 뉴욕 증시는 또 한 번 사상 초유의 하락을 기록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하며, 낙폭 기준으로는 블랙튜즈데이보다도 컸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공황처럼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 점이 두 사건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블랙먼데이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전산화된 프로그램 매매가 매도 신호를 자동으로 확대했고, 파생상품 시장의 연동 효과가 낙폭을 키웠다. 또한 당시 금리 인상 기조와 무역 불균형에 대한 우려도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시장은 글로벌화되어 있었고, 그 여파는 곧바로 유럽과 아시아로 번졌다.

 

그러나 1929년과는 달리, 시장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는 중앙은행과 정책당국이 신속하게 유동성을 공급하고, 이후 거래 중단 장치(circuit breaker) 같은 제도적 장치들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블랙먼데이는 단기적 충격은 컸지만, 시스템 차원의 위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남겼다.

 

마무리하며

블랙튜즈데이와 블랙먼데이는 모두 주식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한순간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하나는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졌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교훈 삼아 확산을 막았다. 두 사건 모두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공황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으며, 규제와 제도의 필요성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래서 이 두 날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경제가 기억해야 할 역사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