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북극의 생존자, 순록(Reindeer)

Egaldudu 2025. 8. 25. 11:02

걷고 있는 순록(Rangifer tarandus), 스웨덴 라플란드 케브네카이세 계곡에서.

By Alexandre Buisse (Nattfodd),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순록(Reindeer, Rangifer tarandus)은 사슴과(Cervidae)에 속하는 포유류로, 북극권과 아한대 전역에 걸쳐, 툰드라와 북방 숲 지대에 서식한다. 북미에서는 캐리부(Caribou)라고 불리며, 빙하기 이후 혹독한 기후에 적응해 살아온 대표적인 종이다.

 

루돌프라는 이름의 순록

겨울이 깊어질수록 많은 아이들이 떠올리는 동물이 있다. 산타클로스(Santa Claus)의 썰매를 끄는 순록(Reindeer, Rangifer tarandus)이다. 빨간 코를 가진 루돌프(Rudolph) 덕분에 순록은 동화적 상상 속에서 살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순록의 삶은 환상보다는 극한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눈보라가 거센 북극(Arctic)의 겨울,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툰드라(tundra), 그리고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이동 속에서 순록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달린다.

 

이동의 여정

순록(Reindeer, Rangifer tarandus)의 삶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일부 집단은 숲이나 산악 지대에 머물며 정주 생활을 하고, 계절에 따라 큰 이동을 하지 않는다. 반면 툰드라 지역의 집단은 계절에 맞추어 이동을 반복한다.

 

이동하는 순록은 먹이를 찾아, 새끼를 낳기 위해, 그리고 혹독한 계절을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들의 이동 거리는 집단마다 다르지만, 한 해 전체를 기준으로 수백에서 천 킬로미터 이상에 이르기도 한다. 봄철이면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마리가 함께 움직여 초원 위를 메우는데, 그 거대한 행렬은 살아 있는 강물처럼 보인다.

풀을 뜯는 알래스카 북부 텔러(Teller) 지역의 순록 무리

By J. J. O'Neill,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혹한을 견디는 몸

순록은 생존을 위해 몸 구석구석을 변형시켜 왔다. 두꺼운 겨울털은 공기를 품어 단열 효과를 내고, 발굽은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여름에는 스펀지처럼 부드러워 늪지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겨울에는 단단해져 얼음과 눈을 파헤치며 먹이를 찾는다. 커다란 발은 마치 천연 스노슈즈처럼 눈 위를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변화는 눈에서도 드러난다. 순록의 망막 뒤쪽은 계절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데, 여름에는 황금빛을 띠어 강한 햇빛 속 눈부심을 줄여 주고, 겨울에는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 어두운 북극 환경에서도 빛을 더 잘 감지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순록의 코가 가진 체온 조절 능력이다. 순록의 코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혈관을 가지고 있어 차가운 공기를 폐에 도달하기 전에 데워 주고, 코가 얼지 않도록 보호한다.

 

뿔과 생존

순록의 뿔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수컷은 9월부터 시작되는 번식기 동안 뿔을 무기로 삼아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치열한 경쟁 끝에 승리한 수컷은 여러 암컷을 거느리지만, 그 대가로 혹독한 체력 손실을 경험한다. 번식기가 끝나는 11월이 되면 수컷은 뿔을 떨어뜨린다.  

 

대부분의 사슴류에서 뿔은 수컷만의 특징이지만, 순록은 예외적으로 암컷도 뿔을 갖고 있다. 이는 사슴과 동물 가운데 순록만이 지닌 독특한 특징이다. 더욱이 임신한 암컷은 겨울 동안 먹이를 지키기 위해 뿔을 유지하며, 봄에 새끼를 낳은 후에야 뿔갈이를 한다. 이는 먹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 새끼를 기르기 위한 전략이다.

캐리부,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 주 포르토쇼이스(Port au Choix)에서

새끼의 성장

순록의 임신 기간은 약 228(7개월 반가량)이며, 새끼는 주로 늦은 봄인 5월과 6월에 태어난다. 태어난 새끼는 곧바로 일어서 어미를 따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발달이 빠르다. 처음에는 어미 젖을 먹으며 자라지만, 다른 사슴류와 달리 젖을 먹는 시기가 짧아 금세 풀을 뜯기 시작한다. 이러한 빠른 성장은 새끼가 짧은 시간 안에 무리를 따라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며, 혹독한 북극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기반이 된다.

 

인간과 함께한 역사

순록은 오랜 세월 북방 민족과 공존해왔다. 고기와 가죽, 뼈와 뿔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원이 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순록을 길들여 썰매와 운반에 이용했다. 오늘날에도 핀란드의 라플란드(Lapland)와 시베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 순록은 단순한 가축이나 야생동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