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북소리
아프리카 고산 열대우림에서 수컷 고릴라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울창한 숲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마치 북소리 같으며, 인간에게는 킹콩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 고릴라들의 중요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놀이와 과시, 그리고 맥락의 다양성
고릴라의 가슴 두드리기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2020년 Primates에 발표된 로베르타 살미(Roberta Salmi)와 마리아 무뇨스(Maria Muñoz) 연구에 따르면, 서부 저지대 고릴라는 맥락에 따라 가슴 두드리기와 손뼉 치기를 다르게 사용한다.
가슴 두드리기는 주로 과시나 놀이 상황에서, 손뼉 치기는 경계나 놀이 상황에서 나타났다. 특히 성체 수컷은 과시 상황에서만 가슴을 두드렸고, 암컷과 어린 개체들은 놀이와 경계 상황에서도 두 행동을 모두 활용했다. 이는 고릴라의 신체적 행동이 단순한 힘의 과시를 넘어, 사회적 맥락에 따라 조율되는 복합적 신호체계임을 보여준다.
소리로 전하는 체격 정보
2021년,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에드워드 라이트(Edward Wright)의 연구는 가슴 두드림 소리가 가진 물리적 의미를 규명했다. 르완다 국립공원에서 관찰된 산악고릴라(Mountain gorilla)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컷의 가슴 두드림 소리는 어깨 너비와 같은 체격 지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몸집이 클수록 더 낮고 깊은 주파수의 소리를 내며, 이 울림은 최대 1km 떨어진 곳까지 전달됐다. 연구팀은 이를 정직한 신호(honest signal)로 해석했다. 실제 몸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싸울 것인지, 물러날 것인지를 판단하게 하는 일종의 분쟁 조절 메커니즘인 셈이다.
경쟁과 짝 선택의 언어
그러나 가슴 두드리기는 경쟁자를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암컷은 소리의 깊이와 울림을 통해 수컷의 크기와 건강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행동은 짝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개체들 사이에서는 놀이와 경계 상황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고릴라 사회의 의사소통을 풍부하게 만든다.
남겨진 과학적 의문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도 있다. 낮은 주파수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가슴의 크기인지, 손의 형태인지, 혹은 후두 주변의 공기주머니 때문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슴 두드리기가 단순한 힘의 과시를 넘어서, 고릴라 사회의 질서를 지탱하고 집단 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언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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