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as1r2 유전자’가 알려주는 미묘한 미각의 진실
고양이가 케이크나 빵에 호기심을 보일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이 녀석, 단맛을 좋아하나 봐.” 하지만 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유전자의 구조에서 비롯된 명확한 사실이다. 고양이는 미각수용체 중 단맛을 감지하는 Tas1r2 유전자에 결함(mutation)이 있다. 이 유전자는 대부분의 포유류에게 있어 ‘달콤함’을 인식하게 해주는 센서다. 그러나 고양이과 동물들은 이 유전자가 비활성화되어 있어 혀 위에 설탕을 얹어도 ‘달다’는 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2. 달콤함을 모르는 육식동물들
이 특성은 고양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다사자, 아시아수달, 점박이하이에나 같은 다른 육식동물도 단맛 수용체 유전자가 손상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결함의 형태가 종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다사자와 돌고래는 단맛뿐 아니라 감칠맛(umami)도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돌고래는 미뢰의 개수가 적어 쓴맛조차 거의 감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육식 위주의 동물에게는 탄수화물이나 당류를 구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단맛의 감각’은 사라진 기능이 되었다.
3. 그런데 왜 고양이는 케이크를 탐낼까?
그렇다면 왜 어떤 고양이들은 설탕이 들어간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걸까? 정답은 간단하다. 맛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다. 고양이는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다. 색감, 질감, 냄새, 모양 — 이 모든 것이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즉, 초콜릿 케이크나 푸딩에 코를 들이대는 이유는 단맛이 아니라 ‘새로운 물체를 탐색하는 본능’ 때문이다.
특히 고양이는 식감과 냄새에 민감하기 때문에 버터나 크림처럼 지방이 많은 향에는 쉽게 끌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건 뭘까?”라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4. 집사가 알아야 할 주의점
문제는 고양이가 단맛을 느끼지 못해도 단 음식은 여전히 해롭다는 것이다. 초콜릿, 인공감미료(특히 자일리톨), 과도한 당분은 고양이에게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조금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단 음식을 나눠주는 것은 금물이다. 고양이가 달콤한 것을 탐내는 듯해 보여도, 그건 ‘맛의 즐거움’이 아니라 ‘감각적 호기심’에 불과하다.
5. 맛이 아닌 감각의 세계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 대신 단백질과 지방의 향과 질감을 통해 먹을 것을 구분한다. 이는 생존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인간에게 ‘맛있다’는 감각이 에너지원인 당분을 찾게 하는 신호라면, 고양이에게 중요한 감각은 단맛이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을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결국, 각 종이 느끼는 ‘맛’은 쾌락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감각의 진화다. 고양이는 단맛을 잃었지만 그 자리에 자신에게 꼭 필요한 감각을 발전시켰다.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여전히 풍부하고, 그 감각 속에서 그들은 세상을 읽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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