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격이 오르는데 왜 더 많이 살까?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늘어난다. 이것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 수요의 법칙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이 법칙을 거스르는 재화도 있다. 바로 기펜재(Giffen good)다.
기펜재는 가격이 상승했는데도 수요가 증가하는 특이한 재화다. 이 현상은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이 저서 『경제학원리』에서 로버트 기펜(Robert Giffen)의 관찰을 인용하며 소개한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 ‘기펜의 역설(Giffen Paradox)’이라 불린다.
2. 기펜재의 핵심 원리
기펜재의 핵심은 ‘비싸도 결국 살 수밖에 없는 재화’다. 이때 소비자는 선택의 여유가 아닌, 제약된 환경 속 생존 원리에 따라 행동한다.
가격이 오르면 실질소득이 줄어든다. 그 결과, 소비자는 비싼 식품이나 여가재를 포기하고 가장 싸면서도 배를 채울 수 있는 재화에 지출을 집중한다. 즉, 대체효과보다 소득효과가 더 크게 작용한다.
- 보통은 “비싸졌으니 다른 걸 사자(대체효과)”
- 하지만 기펜재에서는 “비싸도 이거밖에 못 산다(소득효과)”가 된다.
3. 기펜재의 조건
기펜재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 첫째, 해당 재화는 열등재여야 한다. 즉, 소득이 늘면 오히려 수요가 줄어드는 특성을 가진다.
○ 둘째, 대체재가 거의 없어야 한다.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재화가 없을수록, 소비자는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다.
○ 셋째,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야 한다. 예산 내 비율이 높을수록, 가격 상승의 영향이 전체 소비 구조에 크게 작용한다.
이 세 조건이 충족될 때,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오히려 수요가 집중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4. 실제 사례
●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
19세기 중반, 아일랜드를 덮친 감자 흉작은 사회 전체를 식량난으로 몰아넣었다. 주식이던 감자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밀가루와 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학자 마셜(Alfred Marshall)은 이때 빵값이 급등했음에도 소비가 늘어난 현상을 관찰 사례로 들어, 기펜재의 대표적 예시로 제시했다. 고기나 유제품 같은 고가 식품을 포기하고, 가장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빵에 예산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 2008년 방글라데시의 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방글라데시의 쌀값이 급등했다. 당시 저소득층 가구들은 생필품 가격 전반이 오르자, 고기나 채소, 과일 같은 부차적 식품을 포기하고 쌀 소비를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하루 세 끼를 모두 쌀로만 채우는 ‘생존형 식단’이 확산되면서, 쌀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증가하는 기펜재의 전형적 양상이 나타났다
이처럼 기펜재는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선택의 결핍’에서 나타난다.
5. 오늘날의 의미
기펜재는 경제학 교과서 속 예외처럼 보이지만, 그 존재는 소득 불평등, 구매력 붕괴, 대체재 부재를 드러낸다. 비싸도 살 수밖에 없는 재화가 많다는 건, 그만큼 가난한 소비자들이 선택권을 잃고 있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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