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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슬 컬처(cancel culture): 정의인가, 디지털 사냥인가

Egaldudu 2025. 3. 2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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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 '누가' 캔슬당했대.”


이제 ‘캔슬한다’는 말은 일상적인 농담처럼 쓰이지만, 누군가에겐 생계를 잃을 수 있는 말이다.
단순한 비난을 넘어, 대중이 도덕적 기준에 따라 한 사람을 퇴출시키는 행동.

우리는 지금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는 낯설지 않은 풍경 속에 살고 있다.

 

 

1. ‘캔슬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왔을까?

캔슬이라는 단어는 의외로 오래전 영화에서 시작되었다. 1991년 미국 영화 《뉴 잭 시티(New Jack City)》에서 한 남성이 여자친구에게 “Cancel that bitch. I’ll buy another one”이라는 대사를 던지며, 이 말이 일종의버림의 상징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 ‘cancel’이라는 표현은 힙합 음악과 흑인 커뮤니티에서 유행어처럼 퍼졌다. 이 표현이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계기 중 하나는 2014년 미국 리얼리티 쇼 《Love & Hip Hop: New York》에서 출연자 시스코 로사도(Sisqo Rosado)가 연인에게 “You’re canceled.”라고 말한 장면이었다.

 

해당 장면은 SNS를 통해 밈처럼 확산됐고, ‘cancel’은 점차누군가를 대중적으로 퇴출시키는 행위를 의미하는 문화적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텀블러(Tumblr)와 트위터를 중심으로 퍼진 이 표현은 오늘날의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2.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캔슬 컬처는 단순히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선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이나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해 대중이 불매 운동, 출연 철회 요구, 계약해지 등의 집단행동을 벌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회적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환영받기도 했다. 대중이 권력을 감시하고, 유명인의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 행동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정도속도. 캔슬은 너무 빠르게 일어나고, 너무 쉽게 번진다. 어떤 발언이 악의적이지 않았더라도, 문맥이 잘려 전달되면 순식간에논란이 되고, 캔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3.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캔슬 컬처는 더 이상 유명인만의 일이 아니다. SNS와 커뮤니티가 일상이 되면서, 평범한 개인도 발언 하나로 여론의 표적이 되는 시대. 과거의 게시글이나 댓글이 뒤늦게 논란이 되어 불이익을 겪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가장 주목받는 건 유명인들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 (J.K. Rowling)은 성소수자 관련 발언으로, 오스카 사회자였던 케빈 하트 (Kevin Hart)는 과거 트윗 하나로 큰 반발에 직면했다. 국내에서도 연예인의 학교폭력 의혹, 유튜버의 허위 광고 논란은 순식간에 캔슬로 이어졌다.

 

캔슬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고, 그 대상은 누구든 될 수 있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이상,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다.

 

4. 정의인가, 마녀사냥인가

캔슬 컬처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회복의 여지가 없다는 데 있다. 한 번 캔슬당한 사람은 아무리 사과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영원히 낙인처럼 따라다닌다. 잘못의 경중은 고려되지 않고캔슬될 만한가만 논의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인터넷 속도만큼이나. 때로는 사실 확인조차 안 된 상태에서분노의 연쇄 반응이 일어나고, 감정이 앞서면서 더 이상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캔슬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 안에는 분노, 불안, 군중심리, 때로는 권력의 욕망이 뒤섞여 있다.

 

분명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잘못은 지적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즉각적인 배척이어야만 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캔슬 컬처는 때로 강력한 통제수단이 되지만 동시에 대화와 성찰의 가능성을 지워버릴 위험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