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식물의 잠, 니크티나스티(nyctinasty) 현상

Egaldudu 2025. 10. 10. 12:12

낮 동안 잎을 펼친 리마콩. 밤에는 잎이 아래로 처지며 ‘잠든 자세’를 취한다

식물은 조용하지만 정교한 리듬을 지닌 존재이다. 그들은 낮과 밤을 스스로 감지하며, 하루의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 온도, 그리고 식물의 생체시계

밤이 되면 많은 식물의 잎이 살짝 오므라든다. 마치 휴식을 취하는 듯한 이 움직임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식물도 일정한휴식 리듬을 가지고 있으며, 식물학에서는 이를 니크티나스티(nyctinasty)라고 부른다.

 

니크티나스티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빛의 변화이다. 낮 동안 햇빛을 받는 시간에는 잎이 넓게 펼쳐져 광합성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해가 지면 잎은 아래로 처지거나 접히며 마치에 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 움직임은 단순히 빛의 유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온도와 습도 또한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 일부 식물은 인공적인 빛 아래에서도 일정한 주기를 유지하는데, 이는 식물 내부에 생체시계(circadian rhythm)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잎의 깨어 있는 자세와 잠든 자세

대표적인 예로 콩과식물을 들 수 있다. , 완두, 클로버 등 많은 콩과식물의 소엽(foliole)은 낮 동안 수평에 가깝게 펼쳐져 있는데, 이를 깨어 있는 자세(waking position)’라고 한다. 반면 밤에는 소엽이 거의 수직으로 접히며 잠든 자세(sleeping position)’를 취한다.

 

이 변화는 잎자루 기부에 위치한 작은 기관인 풀비누스(pulvinus)의 세포 내 수분 이동에 의해 일어난다. 낮에는 세포 내부에 물이 많이 들어와 팽창하고, 밤에는 물이 빠져나가 수축하면서 잎의 각도가 달라진다. 이는 식물의근육 운동이라 할 만한 정교한 수분 압력 조절 시스템이다.

 

꽃의 개폐 운동과 에피나스티

활짝 피는 히비스커스. 밤에는 꽃잎이 닫히는 에피나스티(epinasty) 운동을 보인다.

 

잎뿐만 아니라 꽃도 밤이 되면 닫히고 아침에 다시 열린다. 이는 에피나스티(epinasty)라 불리는 운동으로, 니크티나스티의 한 형태이다. 꽃잎의 세포가 비대칭적으로 팽창하거나 수축하면서 꽃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다. 튤립이나 제비꽃, 히비스커스처럼 낮 동안 활짝 피고 밤에는 오므라드는 식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운동은 단순한수면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과 생존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밤에는 수분 증발이 줄어들고,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의 활동도 멈추므로 꽃을 닫는 것이 유리하다.

 

식물의 잠은 성장과 관련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잠의 성향이 어린 식물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장 단계에서 에너지 대사가 활발한 유묘(幼苗)는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니크티나스티가 뚜렷하다. 반면 식물이 성숙해 갈수록 이러한 움직임은 점차 약해진다. 이는 식물의 생리적 유연성이 줄어들고, 구조가 견고해지는 발달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 니크티나스티는 단순한밤의 반응이 아니라 식물의 생장, 에너지 조절, 환경 적응 능력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식물의 수면, 생명의 또 다른 리듬

식물은 뇌도, 신경계도 없다. 하지만 환경의 리듬에 맞춰 생리활동을 조절하며하루를 살아간다. 우리가 흔히 잠이라고 부르는 상태를 생리적 휴식기(physiological rest period)로 확장해 보면, 식물도 나름의 방식으로 잠을 잔다고 할 수 있다.

 

식물의 잎이 밤마다 천천히 접히는 모습은 생명의 또 다른 리듬을 보여준다. 의식이 없더라도, 생명은 주기적으로 고요와 움직임을 반복한다. 그 리듬 속에서 식물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다시 새로운 아침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