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더운 데쓰밸리(Death Valley)와 로드러너(Roadrunner)

Egaldudu 2025. 7. 16. 18:07

데쓰밸리의 건조한 평원과 다채로운 암석 지형이 펼쳐진 사막 풍경 (출처: 픽사베이)

 

증발하는 땀, 지구 최악의 더위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 사이, 모하비 사막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데쓰밸리(Death Valley)는 이름부터 강렬하지만, 그 실체는 훨씬 더 혹독하다.

 

1913 7 10, 이 지역의 퍼니스 크리크(Furnace Creek)에서는 섭씨 56.7(화씨 134)라는 기온이 공식 관측되었다. 이는 세계기상기구(WMO)가 현재까지 인정하고 있는 지구 최고 기온 기록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데쓰밸리는 연평균 강수량이 약 50mm에도 못 미치는 초건조 지역이다. 낮 동안 가열된 지표면의 열이 밤에도 충분히 식지 않고 누적되며, 사방을 둘러싼 높은 산맥은 복사열이 대기 중에 고이도록 막아준다. 바람은 거의 없고 습도도 극도로 낮아, 피부에 맺힌 땀이 느껴지기도 전에 공기 중에 증발해버린다. 이곳의 여름은 단순한 체감이 아니라, 신체 기능을 위협하는 생리학적 환경 그 자체다.

 

해수면 아래의 불가마

데쓰밸리는 단지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북미 대륙에서 가장 낮은 지형이기도 하다. 해수면보다 약 86m 낮은 배드워터 분지(Badwater Basin)는 대기압이 높고 공기가 더 조밀하게 압축되어 있다. 이로 인해 태양열은 더 빠르게 땅을 달구고, 냉각은 더디게 진행된다.

 

지역의 일사(日射)량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이며, 그늘에 설치된 측정기에서도 섭씨 49를 넘기는 날이 드물지 않다. 지표면 온도는 70도에 근접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달걀을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익을 수 있을 정도다. 일부 구간에서는 기계 장비의 정상 작동도 어렵고, 사람은 10분 이상 야외에 머무르기 어렵다.

 

살아 있는 사막: 로드 러너

사막의 새, 로드러너 roadrunner (출처: 픽사베이)

 

이런 극한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데쓰밸리는 완전한죽음의 계곡은 아니다. 극한의 조건 속에서 진화해온 생명체들은 여전히 이곳을 서식지로 삼는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로드러너(roadrunner).

 

로드러너는 뻐꾸기과에 속하는 중형 조류로, 주로 땅 위를 달리며 곤충, 도마뱀, 작은 포유류, 심지어 방울뱀의 새끼까지 잡아먹는 기회주의적 육식성 생물이다. 날개는 짧고,  날지는 않지만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탁월한 지상 사냥꾼이다.

 

더 놀라운 점은 체온 조절 능력이다. 로드러너는 일일 체온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밤에는 체온을 낮춰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아침에는 날개를 펼쳐 태양광을 흡수해 체온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기본 체온이 섭씨 40도에 가깝기 때문에 데쓰밸리의 극한 고온도 이들에게는 큰 생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2007년 미시간 길모어 박물관 ‘레드 반스 스펙태큘러’에서 촬영

 

만화 「루니 툰(Looney Tunes)에 등장하는삐삐로드러너의 모델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로드러너는 코요테보다도 훨씬 강인한 생존자다.

 

뜨거운 지구, 생명의 실험실

데쓰밸리는 지리학적으로도, 생태학적으로도 하나의 생명의 실험실이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며 세계 곳곳이 점점 더 데쓰밸리를 닮아가는 지금, 이곳은 미래 생존 조건의 극단적 예시가 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이 지역의 평균 기온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극한 고온 현상도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적응한 생물들은 고온과 건조를 피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데쓰밸리는 단순한 극한의 땅을 넘어, 적응과 생존이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