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Hummingbird)는 조류 중에서도 비행 방식이 가장 독특한 부류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뒤로 날 수 있는 새이며, 다른 새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정지비행과 고속 곡예 비행을 자유자재로 해낸다. 한국에는 서식하지 않지만, 조류 생태에서 이들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다.
벌새과(Trochilidae)
벌새는 조류 분류학상 벌새과(Trochilidae)에 속한다. 총 360여 종이 알래스카에서부터 남미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까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분포하지만, 대부분은 중남미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종류만큼 색채도 화려하고, 몸길이는 5~21.5cm로 다양하다. 잘 알려진 종으로는 안나벌새(Calypte anna), 루비목벌새(Archilochus colubris), 루푸스벌새(Selasphorus rufus) 등이 있다.
2024년 기준, 21종이 멸종 위기 또는 위급 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날개로 그리는 원, 벌새의 비행 방식
대부분의 새는 날개를 위아래로 퍼덕이며 양력을 만든다. 반면 벌새는 날개를 앞뒤로 회전시키며, "8자형(figure-8)" 경로로 움직인다.
주요 관절인 상완골(humerus)을 어깨 관절에서 비틀 듯이 조절해, 마치 헬리콥터처럼 공중에서 방향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이 방식 덕분에 벌새는 정지비행은 물론, 뒤로 나는 비행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다.
초당 100회 날갯짓, 벌새의 고속 곡예 비행
벌새의 날갯짓 속도는 보통 초당 40~80회지만, 일부 수컷은 구애 비행 중 초당 100회에 가까운 속도를 보이기도 한다. 평소보다 약 40% 더 빠른 이런 고속 날개짓은 대개 짝짓기와 관련이 있다.
이런 고속 비행 중에도 일부 종은 시속 80km 이상으로 급강하하기도 하며, 그 움직임은 일반적인 조류의 범위를 넘어선 고난도 곡예 비행에 가깝다.
에너지는 꽃에서, 속도는 당분에서
벌새는 고속 비행을 유지하기 위해 꽃꿀이라는 고당분 자원을 연료처럼 사용한다. 하루 섭취량은 체중의 절반 이상이며, 일부 개체는 최대 체중의 100% 이상을 섭취하기도 한다.
벌새는 착지하지 않고 공중에서 호버링하며 꿀을 빠는 방식을 택한다. 덕분에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몸집이 큰 새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꽃에도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이들은 대사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자주 먹이를 섭취하지 않으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한국에는 서식하지 않지만, 자주 언급되는 새
벌새는 오직 아메리카 대륙에만 서식하는 조류다. 자연 상태에서는 아시아, 유럽, 한국 등지에서 볼 수 없지만, 벌새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각종 매체를 통해 자주 소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벌새의 호버링 비행과 독특한 먹이 섭취 방식은 조류학, 생체역학, 로봇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자주 인용된다. 벌새는 단순히 작고 화려한 새가 아니라, 비행의 진화가 얼마나 정교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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