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 이야기

아프리카의 유니콘, 오카피(Okapi)

Egaldudu 2025. 10. 21. 00:17

 

한때 전설로 여겨졌던 동물 

아프리카의 유니콘(African unicorn)’이라 불리는 오카피(Okapi)는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포유류 중 하나다. 한때 서양에서는 이 생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정글의 전설로 치부했을 정도로, 오카피는 사람의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빽빽한 콩고의 열대우림 속에서 조용히 살아온 이 동물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과학의 무대에 등장했다.

 

오카피는 얼핏 보면 얼룩말을 닮았다. 다리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줄무늬가 있고, 몸통은 짙은 적갈색을 띤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오카피는 얼룩말이 아니라 기린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실제로 오카피의 혀는 기린처럼 길고 유연해서, 높은 가지의 잎을 감아 뜯어 먹거나 자기 귀를 핥을 수도 있다. 잡을 수 있는 혀(prehensile tongue)’는 정글 깊숙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탁월한 도구다.

 

정글의 숨은 존재

오카피가 서식하는 곳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이투리(Ituri) 숲을 중심으로 한 몇몇 원시 열대우림 지역이다. 이곳은 나무가 높고 햇빛이 거의 닿지 않는 밀림으로, 오카피는 이 어두운 환경에 맞게 진화했다. 이들의 털은 짙은 갈색에 유분이 많아 비를 쉽게 튕겨내며, 은은한 윤기는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방수 기능을 겸한 생존 전략이다.

 

커다란 귀는 방향 감각과 청각을 강화해, 주 포식자인 표범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시력이 나쁜 대신 청각은 탁월하다. 어둡고 복잡한 정글에서 눈보다 귀가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위협이 닥치면 오카피는 재빠르게 달아나거나, 몰릴 경우 뒷다리로 강력한 발차기를 날릴 수도 있다.

 

전설에서 과학으로

서구 세계에서 오카피가 공식적으로 처음 명명된 것은 1901년이다. 영국의 탐험가 해리 해밀턴 존스턴(Sir Harry Hamilton Johnston)이 현지 피그미족에게서 들은정글의 얼룩말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실제 표본을 수집해 영국박물관에 보냈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그 가죽의 줄무늬를 보고 새로운 종의 얼룩말로 오인했다. 하지만 이후 존스턴은 영국군의 도움으로 오카피의 두개골 두 개와 완전한 가죽 표본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오카피가 기린과 같은 과(, Giraffidae)에 속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명 Okapia johnstoni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존스턴 이전에도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가 콩고의 밀림을 탐험하며 이 신비로운 동물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었던 탓에, 오카피는 오랫동안아프리카의 전설로 남아 있었다.

 

자연의 정교한 예술

 

오카피의 몸에는 정글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 적응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리의 흰 줄무늬는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모습을 닮아 있어, 숲속에서 완벽한 위장을 돕는다. 이 패턴은 또한 서로를 따라 이동하기 위한 시각적 신호로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생활은 은밀하고 조용하다. 냄새샘에서 나오는 타르 같은 분비물로 영역을 표시하고, 서로의 목을 비비거나 혀로 핥으며 교류한다. 짝짓기 의식 또한 소리보다는 냄새와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독특한 식습관

오카피는 채식동물이지만, 그 식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하루에 약 20~27kg의 식물을 먹는데, 단순히 잎과 열매만 먹지 않는다. 독성 식물이나 질긴 가지, 버섯까지도 소화할 수 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점토(clay)’를 먹는 습성이다. 오카피는 붉은 점토를 영양 보충제처럼 섭취한다. 식물에서 얻기 어려운 염분과 미네랄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숲속에서는 탄 나무 조각이나 박쥐 배설물을 먹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영양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생존의 지혜다.

 

사라져가는아프리카의 유니콘

오늘날 오카피는 콩고민주공화국의 국조이자 그 희귀성과 상징성 덕분에 지폐의 도안으로도 쓰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1995년부터 2007년 사이, 내전과 불법 사냥, 서식지 파괴로 인해 오카피 개체 수는 40% 이상 감소했다. 숲속 깊은 곳에 숨는 습성 탓에 현재 정확한 개체 수는 파악하기 어렵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오카피를 멸종 위기(Endangered)’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현실 속의 오카피, 현재 

오카피는 인간이 자연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이해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한때 존재 자체가 의심받던 이 동물은 과학적 탐구를 통해 실재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또 다른 위협에 놓여 있다.


콩고의 열대우림이 줄어들고 불법 사냥이 이어지면서, 오카피의 개체 수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이 종을 보전하는 것은 단순히 한 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이 의존하는 생태계 전체를 유지하는 일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