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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슬로우로리스(Javan slowloris)의 느린 귀환

By Jefri Tarigan - 자작, CC BY-SA 4.0, wikimedia commons위기에 처한 슬로우로리스자바 슬로우로리스(Nycticebus javanicus)는 인도네시아 자바섬에만 서식하는 고유종 영장류다. 둥근 눈과 작은 얼굴, 느린 동작으로 인해 귀엽다는 인상을 주지만, 이 동물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멸종 위기 상태에 처한 영장류 중 하나로 분류된다. 불법 애완동물 거래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개체 수가 급감했으며, IUCN 적색목록에서는 ‘위급(Critically Endangered)’ 등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자바 슬로우로리스는 IUCN, CI, 브리스톨 동물학회가 공동 발표하는 ‘세계 25대 위기 영장류 목록’에도 여러 차례 포함된 바 있다. 고립된..

동식물 이야기 2025.05.29

티나무(Tinamus, 도요타조)의 화려한 알, 진화의 실패인가

By Anthony Batista, CC BY 4.0, wikimedia commons.눈에 띄는 알, 위장과는 거리가 먼 선택중남미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티나무(Tinamus major)는 지면 가까운 낙엽 더미 안에 둥지를 트는 조류다. 이 종은 몸길이 약 43cm, 몸무게 약 1,100g으로 작은 칠면조 크기와 형태를 가진다. 몸빛깔은 회갈색으로 시든 잎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새가 낳는 알은 그와는 정반대다. 티나무의 알은 짙은 청록색 또는 형광에 가까운 광택을 띠며, 어두운 숲 바닥에서 오히려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땅에 둥지를 트는 새는 위장된 색의 알을 낳는 데 비해, 티나무의 알은 그와 정반대의 색을 띠고 있다. 암컷은 떠나고, 부화와 새끼 돌봄은 수컷의..

동식물 이야기 2025.05.29

도도새, 다시 모리셔스로 돌아올 수 있을까

유전공학이 이끄는 멸종종 복원의 현실과 과제도도(Dodo, Raphus cucullatus)는 17세기 중반 인간의 도래와 함께 절멸한 모리셔스(Mauritius)의 토착 조류다. 날지 못하는 큰 몸집의 도도새는 오늘날 멸종의 상징으로 흔히 회자된다. 그러나 이 전설적인 새가 유전공학을 통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23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즈 캠퍼스(UC Santa Cruz)의 유전체 연구팀이 박제된 표본에서 도도의 DNA를 추출하고 유전체(Genome) 분석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는 멸종된 종을 복원하려는 이른바 '멸종복원(de-extinction)' 연구에 있어서 큰 전진이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미국의 생명공학 스타트업 ‘콜로설 바이오사이언스(Col..

동식물 이야기 2025.05.28

수선화를 보는 네 가지 시선 + 하나

1.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수선화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피는 봄꽃 중 하나다. 특히, 영국과 웨일스에서는 수선화가 봄의 시작을 상징하는 대표적 식물이다. 눈과 서리를 뚫고 올라와 봄을 알리는 이 꽃은 새로운 한 해의 출발과 생명의 부활을 상징한다. 웨일스에서는 매년 3월 1일 '성 데이비드의 날'에 전통적으로 수선화를 옷에 장식한다. 수선화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 '희망', '존경'이다. 이러한 꽃말은 수선화가 봄을 여는 꽃이라는 계절적 상징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2. 아름답지만 독이 있는 식물수선화는 단정하고 밝은 외형 뒤에 강한 독성을 지닌 식물이다. 식물 전체에 알칼로이드 계열의 독성 물질인 리코린(lycorine)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구근(알뿌리)에 가장 높은 농도로 축적된다. ..

동식물 이야기 2025.05.28

아프기 위해 아픈 사람들, 뮌하우젠 증후군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고통을 피하려는 방향으로 나타나지만 뮌하우젠 증후군은 그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아도 스스로 병든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실제로 자해를 하면서까지 병원을 찾아간다. 치료 과정 자체가 반복되고, 끊임없이 병력을 꾸며내며 이들은 환자로서의 역할에 몰두한다.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 명칭의 유래‘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명칭은 독일 출신의 루돌프 라스페가 1785년에 영어로 쓴 속칭 『뮌하우젠 남작(Baron Munchausen)』이란 소설 속 동명의 주인공에서 유래한다. 허황된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 캐릭터는 18세기 독일 귀족 히로니무스 폰 뮌히하우젠(Hieronymus von Münchhausen)을 모델로, 그 위에..

뒤로 나는 새, 벌새의 비행술

벌새(Hummingbird)는 조류 중에서도 비행 방식이 가장 독특한 부류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뒤로 날 수 있는 새이며, 다른 새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정지비행과 고속 곡예 비행을 자유자재로 해낸다. 한국에는 서식하지 않지만, 조류 생태에서 이들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다. 벌새과(Trochilidae)벌새는 조류 분류학상 벌새과(Trochilidae)에 속한다. 총 360여 종이 알래스카에서부터 남미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까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분포하지만, 대부분은 중남미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종류만큼 색채도 화려하고, 몸길이는 5~21.5cm로 다양하다. 잘 알려진 종으로는 안나벌새(Calypte anna), 루비목벌새(Archilochus colubri..

동식물 이야기 2025.05.27

폼페이 최후의 날 타임라인

기원후 79년 10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의 평범한 하루가 갑자기 지옥으로 변했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32시간 동안, 도시 하나가 사라졌다. 이 글은 고고학적 분석과 고문헌, 퇴적물 연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시간대별 타임라인이다. 🕛 12:00 – 첫 분출약한 수증기 폭발이 시작된다. 마그마가 지하수와 만나면서 생긴 수증기가 재와 함께 분출된다. 이 초기 현상을 '프레아토마그마 폭발(지하수와 마그마가 만나 일어나는 수증기 폭발)'이라고 한다. 재는 주로 화산 동쪽 경사면에 떨어진다. By NOAA, Public Domain. 🕐 13:00 – 플리니우스 분화 시작거대한 화산재 기둥이 하늘로 솟구친다. 높이 19km까지 상승한 이 기둥은 앞으로 17시간 동안 솟아오..

사소한 이야기 2025.05.26

아보카도(avocado), 멸종에서 살아남은 열매

아보카도는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과일이다. 샐러드나 각종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되며 널리 소비된다. 그런데 이 열매의 씨앗은 유난히 크다.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이런 구조로 어떻게 종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초기의 아보카도아보카도(학명 Persea americana)는 최대 20미터까지 자라는 나무로, 녹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현재는 주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재배되며, 그 기원은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중남미 지역에는 메가테리움(Megatherium)이라 불리는 코끼리보다 큰 지상성 나무늘보를 비롯해, 마스토돈 등 다양한 대형 동물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보카도는 대형 포유류의 먹이 활동을 통해 씨앗이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동식물 이야기 2025.05.26

공정무역(fair trade), 착한 소비를 넘어선 구조적 질문

공정무역은 개발도상국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 환경과 노동조건을 함께 고려하는 국제 무역운동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빈곤 완화, 지속 가능한 생산, 사회적 책임에 참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공정무역의 의미공정무역(fair trade)은 겉보기에 가난한 나라를 돕는 방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단순한 원조가 아니다. 이는 세계화의 한계를 드러내고, 보다 공정한 거래 관계를 모색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그 시작은 1940~50년대 유럽과 미국의 종교단체, 시민단체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이후 1988년, 네덜란드에서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라는 이름의 공정무역 커피가 시장에 등장하며 국제 인증 체계가 본격화되었다. 이..

파레토 법칙: 80%를 설명하는 20%의 힘

경제학에서 출발한 통찰‘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은 사회와 경제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불균형의 패턴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1906년,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이탈리아 국민 중 약 20%가 전체 토지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단순한 통계는 그 이후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으며,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어 복잡한 구조 속에서 핵심 요인을 식별하는 틀로 자리 잡게 된다. 숫자가 아니라 구조를 보는 법칙이 법칙에서 말하는 ‘80대 20’이라는 비율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표현이다. 현실에서 정확히 80%와 20%의 비율이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상황에서는 70:30이 되기도 하고, 90:10이나 95:5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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