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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 앤 아이(hook and eye): 작지만 견고한 발명품

옷을 여미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수백 년이 지나도록 자리를 지킨 기술도 있다. ‘훅 앤 아이(hook and eye)’가 바로 그런 예다. 작고 단순한 구조지만, 효용성과 안정성은 오랜 시간에 걸쳐 증명되었다. 중세의 '크로셰와 루프'1300년대 유럽에서 등장한 이 장치는 당시엔 "크로셰(crochet)와 루프(loop)"라 불렸다. Crochet는 프랑스어로 갈고리를 뜻하고, 루프는 고리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갈고리를 고리에 걸어 고정하는 방식이다. 단순하지만 매우 견고하고 반복 사용에 강하다. 이 장치는 특정한 발명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중세의 재단사와 수공 장인들이 실용적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바늘과 실처럼, 기록되지 않은 익명의 도구로 발전..

발명품 이야기 2025.06.07

브루클린 브릿지(Brooklyn Bridge)와 코끼리 점보

1884년 5월, 뉴욕 시민들은 보기 드문 장면을 목격했다. 몸무게 6톤이 넘는 코끼리 점보(Jumbo)를 선두로, 21마리의 코끼리와 17마리의 낙타가 브루클린 다리를 천천히 건넜다. 브루클린 브릿지의 탄생과 구조브루클린 브릿지는 뉴욕의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기 위해 건설된 세계 최초의 강철 현수교로, 1869년에 착공되어 1883년에 완공되었다. 총 길이 1,834미터, 중앙 경간은 약 486미터에 달했다. 설계자는 독일계 미국인 엔지니어 존 로블링(John A. Roebling)이었지만 그는 공사 초기 부상으로 파상풍에 걸려 사망했고, 그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Washington Roebling)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감압병으로 병상에 눕게 되자, 현장 감독은 며느리 에밀리 워런 로블링..

동식물 이야기 2025.06.06

밀림 속의 끓는 강, 샤나이 팀피슈카(Shanay-Timpishka)

By ANIMAL TUBE, CC BY 3.0, wikimedia commons. 1. 끓는 강이란?실제로 끓는 강이 존재한다. 수온이 보통 섭씨 95도 이상, 최고 99도까지 치솟는 이 강은 현지인들에게는 신화의 강으로, 과학자들에게는 미스터리한 자연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강 이름은 샤나이 팀피슈카(Shanay-Timpishka), 의역하면 “태양의 열로 끓는 강”이다. 상류는 평범한 열대우림 개울처럼 약 27°C에 불과하지만, 강이 지질 단층대(fault zone)를 지나면서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지열수가 섞이며 물의 온도는 끓는 수준까지 상승한다. 2. 어디에 있는가?샤나이 팀피슈카는 페루의 아마존 열대우림에 위치한 파치테아 강(Pachitea River)의 지류로, 결국 아마존 강의 주요 발원지인..

이모지(emoji), 모두가 똑같이 이해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 메시지 창 속 이모지는 때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그 의미가 누구에게나 같게 전해질까? 최근 노팅엄 대학교에서 수행된 연구는 이모지가 단순한 감정 기호가 아니라, 성별, 나이, 문화적 배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복합적 신호임을 보여주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 해석은 동일하지 않다연구진은 영국과 중국의 성인 523명을 대상으로, 대표적인 감정 이모지 24개를 보여주고 여섯 가지 기본 감정(기쁨, 슬픔, 분노, 놀람, 공포, 혐오)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를 선택하게 했다. 실험은 애플, 안드로이드, 윈도우, 위챗 등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이모지를 함께 활용했으며, 각 이모지가 어떤 감정으로 읽히는지를 정량화했다. 그 결과, 감정 표현이 명확한 ‘기쁨..

사소한 이야기 2025.06.06

바닷물 속에 뿌리내린 숲, 맹그로브

경계에 뿌리내린 이름, 맹그로브맹그로브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경계, 조수의 흐름 속에 뿌리내린 독특한 식물이다. 이들은 단순한 나무 군락이 아니라 생태계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복합적 시스템에 가깝다. 조수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땅에 정착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뿌리는 깊고 견고하며 생존전략은 매우 정교하다. ‘맹그로브(mangrove)’라는 영어 단어는 스페인어 mangle 또는 포르투갈어 mangue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이들 단어는 남미 지역의 토착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영어에서는 처음에 mangrow라는 형태로 쓰이다가, ‘숲’을 뜻하는 grove와 결합되어 지금의 형태가 정착되었다. 바닷물 속 삼림, 맹그로브 숲맹그로브 숲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의 하구,..

동식물 이야기 2025.06.06

골디락스 경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상태

출처: New York Public Library, CC0 1.01. 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에서 빌려온 비유‘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라는 표현은 영국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and the Three Bears)」의 설정을 경제상황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동화는 본래 경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이 표현은 1990년대 초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슐먼(David Shulman)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는 숲 속을 걷다가 작고 아담한 집을 발견한다. 문이 열려 있고,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세 개의 수프 그릇을 발견한다. 첫 번째 수프는 너무 뜨겁고, 두 번째는 너무 차갑다. 마지막 세 번째 수프는 ..

적도 아래에도 펭귄이 산다: 갈라파고스의 펭귄들

뜨거운 태양 아래적도 아래 갈라파고스 제도 해안. 검은 화산암 위에 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푸른 바다와 맹그로브 숲을 배경으로, 그들은 햇살을 쬐거나 조용히 물속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 풍경은 많은 사람들의 상식과 어긋난다. 펭귄은 차가운 남극, 얼음과 눈으로 덮인 대륙에만 사는 동물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라파고스펭귄(Galápagos penguin, Spheniscus mendiculus)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펭귄은 실제로 적도를 가로지르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일부 섬에 서식한다. 이는 전 세계 17종의 펭귄 가운데 가장 북쪽에 분포하는 종이며, 유일하게 적도 아래에서 살아가는 펭귄이다. 평균 키는 약 50cm로 비교적 작은 편이고, 눈가에서 목선을 따라 이어지는..

동식물 이야기 2025.06.05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무책임한 공유의 결말

공유지의 비극이란?‘공유지의 비극’은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자원이 각자의 이익을 좇는 행동 속에서 결국 고갈되거나 황폐화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한정된 자원을 여러 사람이 자유롭게 사용할 때, 단기적 이익은 개인에게 돌아가지만 장기적 손실은 전체에게 분산된다. 이로 인해 결국 모두가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공유지의 비극은 환경 문제, 공공 정책, 자원 관리 등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인용되며, 인간 사회의 협력과 이기심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념의 기원‘공유지의 비극’이라는 표현은 1968년 생물학자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과학 학술지 『Science』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는 사고실험은 19세기 영..

레드오션, 블루오션, 퍼플오션: 시장을 색으로 읽다

기업은 언제나 경쟁 속에 놓인다. 어떤 곳은 이미 경쟁이 포화상태이고, 어떤 곳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 그리고 또 어떤 곳은, 익숙한 시장에서 낯선 감각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이런 시장의 상태와 전략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레드오션(Red Ocean), 블루오션(Blue Ocean), 퍼플오션(Purple Ocean)이다. 1. 레드오션(Red Ocean): 포화된 시장레드오션은 이미 많은 기업들이 진입해 있는 시장을 말한다. 기술도, 제품도, 고객도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고, 기업들은 서로를 의식하며 점유율 싸움을 벌인다. 소비자의 선택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더 낮은 가격, 더 많은 혜택, 더 큰 광고비가 필요하다. 이런 시장에서는 경쟁자가 곧 기준이 되며, 모든 전략이 상대방과의 비교를 전..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비싸야 팔리는 이유, 그리고 그 그림자

1.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소비의 역설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어든다. 이것이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 상품들이 있다. 가격이 비쌀수록 오히려 더 잘 팔리는 상품, 비싸기 때문에 사는 소비자가 존재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고 부른다. 베블런 효과는 단순한 고가소비가 아니라, 가격 자체가 구매 동기이자 사회적 신호가 되는 현상을 뜻한다. 제품이 가진 기능이나 품질보다는 그 제품을 소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지위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고급 시계, 명품 패션, 슈퍼카, 희소한 한정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 ‘과시적 소비’에서 출발한 개념‘베블런 효과’라는 말은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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