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이야기

가계약금

Egaldudu 2025. 2. 17. 17:33

가계약금은 해약금이 아닐 수도 있다

 

픽사베이 이미지

 

가계약이란 부동산 거래상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편법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식 법률 용어가 아니다. 관행상 본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부동산을 선점할 목적으로 계약금의 일부를 미리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일종의 예비계약적 성격을 갖는다. 달리 표현하면, “매수할 의사는 분명합니다. 계약금 일부를 먼저 지불하겠으니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까지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말아주세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에서 가계약이 본계약으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단순히 마음이 변해서 가계약이 파기되는 경우도 있지만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 예상과 달리 은행 대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집안에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크고 작은 우환이 발생할 수도 있다.


새 전세집을 찾아 돌아다니던 안다정씨는 마침내 마음에 딱 드는 아파트를 발견했다. 어렵게 찾은 전세집이라 안 다정씨는 그 집을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공인중개사도 좋은 물건이니 미리 가계약금이라도 걸어 놓으라고 조언했다. 안다정씨는 집주인에게 가계약금으로 3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런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안다정씨는 그 계약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안다정씨는 임대인에게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유사한 임차보증가계약금 반환과 관련된 최근(2022년 9월 29일) 판결에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

가계약금에 관하여 해약금 약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약정의 내용,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의 관행 등에 비추어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약정하였음이 명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1다248312 판결 참조).

 

안다정씨의 경우 임대인은 가계약금의 반환을 단호히 거절했다. 임대인은 가계약금도 계약금처럼 해약금에 해당하므로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경우 법원의 판단은 다를 것이다. 위에 인용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추론한다면 임대인은 안다정씨에게 가계약금을 돌려줘야 한다.

 

판례에 따르면 가계약금이 해약금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명확한 약정이 있어야 하고, 계약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가 명백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가계약금과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계약 때 본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 즉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하겠다는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약금은 정식 계약금이 아니라 편의상 관행으로 주고 받는 것이다. 따라서 가계약금을 지급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해약금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계약 체결 전에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한다고 분명히 합의하지 않은 이상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가계약금을 몰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판결에서 드러난 대법원의 명확한 입장이다.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보기 위한 약정은 명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구두로 한 약속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간단한 문서(일종의 가계약서) 또는 문자메시지, 송금내역, 대화 또는 통화 녹음 등을 통하여 증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