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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없이도 번성하는 식물, 고사리

By Chris Light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꽃 없이 살아온 식물, 고사리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식물의 이미지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꽃도, 열매도, 씨앗도 없이도 번성해온 식물들이 있다. 바로 양치식물(fern, Pteridophyte)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대표가 고사리(Bracken fern, Pteridium aquilinum)이다. 고사리는 봄이면 산기슭에서 또아리를 튼 듯 새순이 올라오는 모습으로 쉽게 눈에 띈다. 이 어린 순을 삶아 말린 뒤 다시 조리해 먹는 것이 바로 우리가 ‘고사리나물’이라 부르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고사리류 가운데는 식용 가능한 종이 10여 종에 이른다...

동식물 이야기 2025.09.30

고양이는 단맛을 느낄까?

1. ‘Tas1r2 유전자’가 알려주는 미묘한 미각의 진실고양이가 케이크나 빵에 호기심을 보일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이 녀석, 단맛을 좋아하나 봐.” 하지만 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유전자의 구조에서 비롯된 명확한 사실이다. 고양이는 미각수용체 중 단맛을 감지하는 Tas1r2 유전자에 결함(mutation)이 있다. 이 유전자는 대부분의 포유류에게 있어 ‘달콤함’을 인식하게 해주는 센서다. 그러나 고양이과 동물들은 이 유전자가 비활성화되어 있어 혀 위에 설탕을 얹어도 ‘달다’는 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2. 달콤함을 모르는 육식동물들이 특성은 고양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다사자, 아시아수달, 점박이하이에나 ..

동식물 이야기 2025.09.28

쑥, 한국의 향과 생명력을 품은 허브

1. 서론: 허브식물로서의 쑥허브식물은 본래 줄기가 목질화되지 않은 초본식물을 뜻하지만, 일상적 맥락에서는 향기·맛·약효 등 인간이 활용하는 성질을 가진 초본식물을 가리킨다. 쑥은 두 정의 모두에 부합한다. 국화과(Asteraceae) 쑥속(Artemisia)에 속하며, 향기 성분과 약리 성분을 함께 가진 전통 허브이다. 2. 분포와 특성쑥은 극지방과 일부 특수 지역을 제외한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교란지(攪亂地, 사람의 손길이 닿은 땅이나 식생이 훼손된 곳)나 빈터, 길가 틈처럼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군락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건조한 환경에 적응한 잎 뒷면의 미세한 털(잔모)은 수분 손실을 줄이고, 공기 흐름을 저지해 증산을 억제한다. By KENPEI, CC BY-SA 3.0, wikime..

동식물 이야기 2025.09.28

벌의 윙윙거림, 날개가 아닌 가슴이 내는 소리

By Jon Sulliva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날갯짓이 아닌 가슴의 움직임벌의 윙윙거림은 단순히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아니다. 벌은 새나 박쥐처럼 날개에 직접 연결된 근육이 없다. 대신 날개는 가슴(thorax) 내부의 간접 비행근(indirect flight muscles)에 의해 움직인다. 이 근육들은 가슴벽, 특히 등판(dorsal wall)에 붙어 있으며, 수축할 때마다 가슴의 형태를 바꾸어 날개를 ‘튕겨’ 올린다. 근육이 만드는 진동의 리듬먼저, 등배근(dorso-ventral muscle)이 수축하면 가슴의 윗벽이 아래로 잡아당겨진다. 벽이 움푹 들어가면서 위쪽으로 연결된 날개가 위로 젖혀진다. 이후 등세로근(dorsal-longitudina..

동식물 이야기 2025.09.27

사과 씨앗에는 정말 독성이 있을까?

사과 씨앗, 그냥 삼켜도 괜찮을까?사과를 먹다 보면 씨앗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버리지만, 혹시 씨앗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실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다만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수준에서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씨앗 속에 숨은 화학물질, 아미그달린사과 씨앗에는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시안배당체(cyanogenic glycoside)의 일종으로, 장내 세균이 만들어내는 효소에 의해 분해되면 시안화수소(HCN)를 방출한다. 시안화수소는 세포 호흡을 억제하는 독성 물질로, 과량 섭취할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By Unknown author – LibreTexts, ..

동식물 이야기 2025.09.26

탄산음료가 톡 쏘는 이유는?

여름철 갈증을 달래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료 중 하나가 바로 탄산음료다. 입 안에서 퍼지는 짜릿한 청량감은 단순히 시원한 온도 때문이 아니라, 물리적·화학적 요소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기포의 정체, 이산화탄소탄산음료 속 기포는 이산화탄소(CO₂)가 만들어낸 것이다. 제조 과정에서 높은 압력으로 주입된 이산화탄소는 액체 속에 녹아들고, 이때 적용되는 원리가 바로 헨리의 법칙(Henry’s law)이다. 기체가 액체에 녹는 양은 기체가 가하는 압력에 비례하기 때문에, 병이나 캔 안에는 대기압보다 높은 압력이 유지되며 이산화탄소가 안정적으로 머문다. 그래서 탄산음료를 흔들면 내부 압력 균형이 깨져 CO₂가 급격히 빠져나가며, 종종 거품이 폭발하듯 넘치게 된다. 뚜껑을 여는 순간의 변화캔이나 병을 열면..

사소한 이야기 2025.09.24

기후 변화와 곤충 감소에 맞서는 나팔꽃의 전략

여름 아침을 열어주는 꽃나팔꽃(Ipomoea purpurea)은 여름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식물이다. 담장이나 지지대를 타고 길게 뻗어 올라가는 덩굴에 나팔 모양의 화려한 꽃을 피운다. 이 꽃은 새벽 햇살을 받으면 활짝 열리고, 오후가 되면 시들어 하루라는 짧은 개화 주기를 가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침의 얼굴’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덧없는 아름다움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하지만 한 송이의 수명은 짧아도, 식물 전체로 보면 매일 새 꽃이 피어 긴 시간 동안 생명력을 이어간다. 여름부터 가을까지(주로 7~8월) 덩굴 곳곳에서 꽃봉오리가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으며, 나팔꽃은 짧은 순간과 지속적인 생명..

동식물 이야기 2025.09.23

수다스런 고래, 벨루가 이야기

벨루가(Delphinapterus leucas)는 북극과 그 주변 차가운 바다에 사는 흰 고래다. 독특한 외모와 다양한 목소리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바다의 카나리아’라고 불릴 만큼 소리 표현이 풍부하다. 하지만 벨루가의 진짜 매력은 단순히 귀여운 외모나 울음소리만이 아니라, 혹독한 극지 환경에 맞춰 진화한 놀라운 적응력과 복잡한 사회적 행동에 있다. 다양한 발성과 대화법벨루가는 동물계에서도 손꼽히는 말 많은 고래다. 지저귐, 끙끙거림, 삐걱거림, 휘파람 등 수십 가지의 소리를 내며, 풍부한 발성 레퍼토리를 지니고 있다. 이 다양한 소리는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무리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얼음 밑이나 빛이 거의 닿지 않는 북극의 어두운 바닷속에서 소리는 벨루가 무리가 함께..

동식물 이야기 2025.09.20

하와이 토종 나무달팽이 ‘조지(George)’의 죽음과 멸종 이야기

By David Sischo,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사건 개요2019년 1월 1일, 하와이 오아후 섬에서 토종 나무달팽이 아카티넬라 아펙스풀바(Achatinella apexfulva)의 마지막 알려진 개체 ‘조지’가 약 1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와이 주 토지·자연자원부(DLNR)는 보도자료에서 조지의 죽음을 공식 확인했고, 그의 이름이 갈라파고스의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에서 따왔음을 밝혔다. 이로써 해당 종은 사실상 멸종으로 간주된다. 조지의 생애와 번식의 실패1997년, 연구자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A. apexfulva 10마리의 보전과 번식을 위해 하와이대 실험실로 옮겼다. 몇 차례의 산란이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질병과 개체 수 감소로..

동식물 이야기 2025.09.18

고릴라들은 왜 가슴을 두드릴까?

숲 속의 북소리아프리카 고산 열대우림에서 수컷 고릴라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울창한 숲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마치 북소리 같으며, 인간에게는 킹콩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 고릴라들의 중요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놀이와 과시, 그리고 맥락의 다양성고릴라의 가슴 두드리기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2020년 Primates에 발표된 로베르타 살미(Roberta Salmi)와 마리아 무뇨스(Maria Muñoz) 연구에 따르면, 서부 저지대 고릴라는 맥락에 따라 가슴 두드리기와 손뼉 치기를 다르게 사용한다. 가슴 두드리기는 주로 과시나 놀이 상황에서, 손뼉 치기는 경계나 놀이 상황에서 나타났다. 특히 성..

동식물 이야기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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