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03

도도새, 다시 모리셔스로 돌아올 수 있을까

유전공학이 이끄는 멸종종 복원의 현실과 과제도도(Dodo, Raphus cucullatus)는 17세기 중반 인간의 도래와 함께 절멸한 모리셔스(Mauritius)의 토착 조류다. 날지 못하는 큰 몸집의 도도새는 오늘날 멸종의 상징으로 흔히 회자된다. 그러나 이 전설적인 새가 유전공학을 통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23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즈 캠퍼스(UC Santa Cruz)의 유전체 연구팀이 박제된 표본에서 도도의 DNA를 추출하고 유전체(Genome) 분석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이는 멸종된 종을 복원하려는 이른바 '멸종복원(de-extinction)' 연구에 있어서 큰 전진이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미국의 생명공학 스타트업 ‘콜로설 바이오사이언스(Col..

수선화를 보는 네 가지 시선 + 하나

1.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수선화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피는 봄꽃 중 하나다. 특히, 영국과 웨일스에서는 수선화가 봄의 시작을 상징하는 대표적 식물이다. 눈과 서리를 뚫고 올라와 봄을 알리는 이 꽃은 새로운 한 해의 출발과 생명의 부활을 상징한다. 웨일스에서는 매년 3월 1일 '성 데이비드의 날'에 전통적으로 수선화를 옷에 장식한다. 수선화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 '희망', '존경'이다. 이러한 꽃말은 수선화가 봄을 여는 꽃이라는 계절적 상징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2. 아름답지만 독이 있는 식물수선화는 단정하고 밝은 외형 뒤에 강한 독성을 지닌 식물이다. 식물 전체에 알칼로이드 계열의 독성 물질인 리코린(lycorine)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구근(알뿌리)에 가장 높은 농도로 축적된다. ..

아프기 위해 아픈 사람들, 뮌하우젠 증후군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고통을 피하려는 방향으로 나타나지만 뮌하우젠 증후군은 그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아도 스스로 병든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실제로 자해를 하면서까지 병원을 찾아간다. 치료 과정 자체가 반복되고, 끊임없이 병력을 꾸며내며 이들은 환자로서의 역할에 몰두한다.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 명칭의 유래‘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명칭은 독일 출신의 루돌프 라스페가 1785년에 영어로 쓴 속칭 『뮌하우젠 남작(Baron Munchausen)』이란 소설 속 동명의 주인공에서 유래한다. 허황된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 캐릭터는 18세기 독일 귀족 히로니무스 폰 뮌히하우젠(Hieronymus von Münchhausen)을 모델로, 그 위에..

뒤로 나는 새, 벌새의 비행술

벌새(Hummingbird)는 조류 중에서도 비행 방식이 가장 독특한 부류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뒤로 날 수 있는 새이며, 다른 새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정지비행과 고속 곡예 비행을 자유자재로 해낸다. 한국에는 서식하지 않지만, 조류 생태에서 이들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다. 벌새과(Trochilidae)벌새는 조류 분류학상 벌새과(Trochilidae)에 속한다. 총 360여 종이 알래스카에서부터 남미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까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분포하지만, 대부분은 중남미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종류만큼 색채도 화려하고, 몸길이는 5~21.5cm로 다양하다. 잘 알려진 종으로는 안나벌새(Calypte anna), 루비목벌새(Archilochus colubri..

동식물 이야기 2025.05.27

폼페이 최후의 날 타임라인

기원후 79년 10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의 평범한 하루가 갑자기 지옥으로 변했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32시간 동안, 도시 하나가 사라졌다. 이 글은 고고학적 분석과 고문헌, 퇴적물 연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시간대별 타임라인이다. 🕛 12:00 – 첫 분출약한 수증기 폭발이 시작된다. 마그마가 지하수와 만나면서 생긴 수증기가 재와 함께 분출된다. 이 초기 현상을 '프레아토마그마 폭발(지하수와 마그마가 만나 일어나는 수증기 폭발)'이라고 한다. 재는 주로 화산 동쪽 경사면에 떨어진다. By NOAA, Public Domain. 🕐 13:00 – 플리니우스 분화 시작거대한 화산재 기둥이 하늘로 솟구친다. 높이 19km까지 상승한 이 기둥은 앞으로 17시간 동안 솟아오..

사소한 이야기 2025.05.26

아보카도(avocado), 멸종에서 살아남은 열매

아보카도는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과일이다. 샐러드나 각종 요리에 다양하게 활용되며 널리 소비된다. 그런데 이 열매의 씨앗은 유난히 크다.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이런 구조로 어떻게 종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초기의 아보카도아보카도(학명 Persea americana)는 최대 20미터까지 자라는 나무로, 녹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현재는 주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재배되며, 그 기원은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중남미 지역에는 메가테리움(Megatherium)이라 불리는 코끼리보다 큰 지상성 나무늘보를 비롯해, 마스토돈 등 다양한 대형 동물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보카도는 대형 포유류의 먹이 활동을 통해 씨앗이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동식물 이야기 2025.05.26

공정무역(fair trade), 착한 소비를 넘어선 구조적 질문

공정무역은 개발도상국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 환경과 노동조건을 함께 고려하는 국제 무역운동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빈곤 완화, 지속 가능한 생산, 사회적 책임에 참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공정무역의 의미공정무역(fair trade)은 겉보기에 가난한 나라를 돕는 방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단순한 원조가 아니다. 이는 세계화의 한계를 드러내고, 보다 공정한 거래 관계를 모색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그 시작은 1940~50년대 유럽과 미국의 종교단체, 시민단체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이후 1988년, 네덜란드에서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라는 이름의 공정무역 커피가 시장에 등장하며 국제 인증 체계가 본격화되었다. 이..

파레토 법칙: 80%를 설명하는 20%의 힘

경제학에서 출발한 통찰‘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은 사회와 경제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불균형의 패턴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1906년,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이탈리아 국민 중 약 20%가 전체 토지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 단순한 통계는 그 이후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으며,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어 복잡한 구조 속에서 핵심 요인을 식별하는 틀로 자리 잡게 된다. 숫자가 아니라 구조를 보는 법칙이 법칙에서 말하는 ‘80대 20’이라는 비율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표현이다. 현실에서 정확히 80%와 20%의 비율이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상황에서는 70:30이 되기도 하고, 90:10이나 95:5처..

스펀지(sponge), 동물에서 발명품으로

우리가 매일 쓰는 스펀지, 그 원형은 물 속에 사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해면은 동물이다해면(海綿, sponge)은 바다나 민물에 사는 다세포 생물로, 움직이지 않고 바닥에 붙어 살아간다. 뿌리도 잎도 없고 감각기관도 없어 식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동물에 속한다. 광합성을 하지 않으며, 물속의 유기물을 걸러 영양분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해면의 일부 세포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몸 전체에 물이 흐르는 통로를 만들어 그 안에서 플랑크톤을 걸러낸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해면은 ‘살아 있는 정수기’로 불리기도 한다. 동물로서 해면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그 세포 구조와 생리작용이다. 신경도 근육도 없지만, 세포는 동물세포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에너지를 얻는 방식 또한 식물과는 다르다. ..

발명품 이야기 2025.05.25

리플리 증후군: 거짓말이 정체성이 될 때

1. 영화에서 시작된 용어‘리플리’라는 캐릭터는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 1955)』에서 처음 등장한 인물이다. 이후 총 5부작으로 이어지는 ‘리플리 시리즈’의 주인공인 이 캐릭터는 타인의 삶을 도용하고 거짓된 정체성 속에서 살아가며, 자기기만을 일삼는 존재로 묘사된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라는 표현은 정신의학의 정식 용어는 아니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1999년 영화 《재능 있는 미스터 리플리》 이후, 주인공 리플리의 행동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언론과 심리 담론에서 임의로 만들어진 용어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리플리는 살인을 저지른 후, 자신이 동경..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