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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퍼링(Tapering), 연준이 유동성을 줄이는 방식

테이퍼링(tapering)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이하 연준)가 양적완화 정책(QE) 하에서 시행해온 자산 매입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조치를 말한다. 이는 완화적 통화정책에서 긴축정책으로의 이행을 알리는 초기 단계이며, 일반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선행된다. 양적완화와 테이퍼링의 연결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는 연준이 경기 침체기에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같은 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이 조치는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경제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사용된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되면 이러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 테이퍼링은 이때 연준이 자산 매입 규모를 갑자기 멈추지 않고, 단계적으로 ..

새들은 어떻게 노래할까? – 성대 없는 가창자들

By Cyril Adelbert Stebbins,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새들의 발성기관, 시린스(syrinx)아침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종마다 정교하게 발달한 울음의 패턴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정교한 소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놀랍게도 새들은 우리처럼 후두 (larynx)나 성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그들은 독특한 발성 기관인 시린스(syrinx)를 통해 소리를 낸다. 시린스는 새의 기도(trachea)와 기관지(bronchus)가 갈라지는 지점, 정확히 폐 바로 위에 자리잡은 작고 정교한 발성 기관이다. 모양은 작은 공 모양의 구조지만, 그 안에는 진동하는 막(membrane)과 이를 조절하는 근육..

동식물 이야기 2025.07.27

모래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암석에서 해변까지

여름날 해변을 걷다 보면 발밑에서 부드럽게 밀리는 모래의 감촉이 느껴진다. 물론 그 순간, 그 작은 알갱이들이 어디서 왔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에 도달했는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이 수백만 년 동안 지구가 쉼 없이 깎이고 부서진 끝에 만들어진 입자들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 감촉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풍화의 시작: 바위는 어떻게 모래가 되는가지구 표면의 암석은 끊임없이 풍화된다. 바람, 비, 눈, 얼음, 태양열, 식물의 뿌리, 미생물 – 이 모든 요소가 바위를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부순다. 이것이 바로 기계적 풍화(mechanical weathering)와 화학적 풍화(chemical weathering)다. 전자는 바위를 깨뜨리고, 후자는 그 성분을 분해한다. 하지만..

디스토피아(dystopia), 유토피아의 반대말인가

디스토피아의 언어적 기원‘디스토피아(dystopia)’는 처음부터 존재했던 개념이 아니다. ‘유토피아’가 세상에 나온 1516년, 디스토피아라는 단어는 아직 없었다. 이상향을 그린 사람은 있었지만, 그 반대의 세계를 지칭할 만한 말은 없었던 것이다. 디스토피아란 말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후반의 영국이다. 영국 하원 의원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1868년 의회 연설에서 ‘디스토피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지나치게 억압적인 정책을 풍자했다. 단어는 당시 사전에 없었고, 일종의 즉석 조어였다. 그리스어 ‘dys’(나쁜)와 ‘topos’(장소)를 결합해, ‘나쁜 장소’라는 뜻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뒤 디스토피아는 점차 유토피아의 ‘대조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유토..

유토피아(Utopia)’, 가능성만으로도 존재하는 곳

‘존재하지 않는 장소’의 탄생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1516년 라틴어로 쓴 『최선의 공화국 체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De optimo reipublicae statu deque nova insula Utopia)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로 표기되었지만, 그 구성은 고대 그리스어에 기반한다. ‘U’는 그리스어 ‘ou(οὐ)’, 즉 ‘없다’를 뜻하는 부정 접두사이고, ‘topos(τόπος)’는 ‘장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Utopia’는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뜻한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는 ‘좋다’를 의미하는 또 다른 그리스어 ‘eu(εὐ)’와 소리상 유사하여, ‘이상적인 장소’라는 긍정적 ..

커리어(career)와 잡(job), 뭐가 다를까

말의 차이커리어(career)와 잡(job)은 모두 ‘일’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 두 단어는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커리어를 쌓는다”는 표현에는 장기적 성장과 전문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반면, “잡을 구한다”는 말은 보다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인상을 준다. 단어 하나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게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어디서 비롯됐나job이라는 단어는 16세기 영어에서 ‘작업의 조각(piece of work)’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일시적이고 분할된 노동, 주로 수공업자가 맡는 단속적인 일을 가리켰다. 반면 career는 프랑스어 carrière에서 왔고, 그 어원은 라틴어 carraria, 즉 수레가 달리던 길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말이나 수레가 질주하는 경주로를 ..

나르시시즘(Narcissism), 과잉 자존감의 이면

나르시시즘의 기원‘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 신화와 현대 심리학 모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신화 속 인물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매혹되어 그 모습을 안으려다 물에 빠져 죽는다. 그는 타인의 사랑을 거부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파괴되는 존재로 그려지며, 이 이야기는 병적인 자기 집착의 상징으로 해석되어왔다. 이 신화를 현대 심리학 개념으로 전환한 인물이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였다. 그는 1914년 논문에서 나르시시즘을 정신 발달의 한 단계이자 병리적 자기애의 구조로 이론화했다. 프로이트는 먼저 영아기의 자기중심적 상태를 ‘1차 나르시시즘’이라 부르고, 이후 성인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리비도(심리적 에너지)를 집..

고슴도치와 5000개의 가시

고슴도치는 유럽과 서아시아의 숲과 정원에서 흔히 발견되는 야행성 포유류다. 작고 둥근 몸에 가시를 두르고 있는 이 동물은 방어본능으로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감각과 빠른 반응 속도를 갖춘 야생의 생존자다. 빠른 걸음과 실용적인 발고슴도치(Erinaceus europaeus)는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마른 식물 조각을 모아 자신만의 둥지를 만든다. 그러나 이 발은 단지 둥지 조성용이 아니다. 고슴도치는 이 다리로 시속 약 7km, 초당 약 2미터의 속도로 걷는다. 몸길이 30cm 남짓한 동물로서는 놀라운 속도다. 100개에서 5000개로, 가시의 진화고슴도치는 태어날 때 분홍빛 피부에 부드러운 털과 함께 약 100개 안팎의 연한 가시를 지닌다. 이 초기 가시는 거의 투명하고 유연하지만, 생후 4~5..

동식물 이야기 2025.07.24

여우, 감각과 전략의 야생 포식자

넓은 서식 범위여우(Vulpes vulpes)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다. 대도시 외곽에서부터 시베리아의 삼림, 사막의 바위틈까지, 여우가 없는 곳을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이 놀라운 분포력의 배경에는 단순한 생존기술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다. 여우는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조건을 파악하고, 상황에 맞춰 반응을 바꾸며, 이전의 경험을 기반으로 행동을 조정한다. 이는 야생 동물들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특성이다. 개과 동물 중 독립적인 분기여우는 넓은 의미에서 개과(Canidae)에 속하는 동물이다. 늑대, 코요테, 개처럼 무리 생활을 기반으로 한 종들과 함께 분류되지만, 여우는 이들과는 뚜렷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여우가 속한 여우속(Vulpes)은 비..

동식물 이야기 2025.07.24

하늘을 장악한 기술, 드론(Drone)

무인항공기의 역사부터 산업을 바꾸는 현재까지하늘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무인항공기(UAV, Unmanned Aerial Vehicle), 일명 드론은 하늘을 나는 무인 비행체로 이미 우리의 일상과 산업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우리에겐 단순한 취미 촬영 도구로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의료, 물류, 환경 모니터링, 우주 탐사,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적 전환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드론이 처음부터 민간 기술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그 기원은 전쟁과 군사전략에 있으며, 첨단 무기의 일환으로 개발되고 진화해 왔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드론은, 이처럼 군사 기술을 뿌리에 두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쳐 등장한 결과물이다. 드론의 탄생: 무선 조종의 시작드론의 아이디어는 19세기 말,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

발명품 이야기 202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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