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49

매운 맛, 캡사이신, 아니 난 고추 소리만 들어도 땀이 난다

1. 매운 것과 나, 상극의 관계나는 고추 소리만 들어도 땀이 난다. 먼저 확 더운 기운이 나고 땀이 맺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매운 음식이 들어오면 온몸이 본격적인 반응을 시작한다.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코가 맵고, 혀가 아리다 못해 얼얼하다. 그러다 보면 음식 맛은 고사하고 물만 찾게 된다. 되물릴 수도 없다. 이렇게 매울줄 몰랐다 후회해도 샹황은 대략 난감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그 감각을 즐기는 것 같다. 심지어 일부러 더 매운 것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2. 사람마다 다른 반응의 이유이런 반응은 단지 취향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 속에 무언가 다른 생리적 혹은 심리적 이유가 있는 걸까?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capsaicin)이라는 화합물 때문이다. 이..

동식물 이야기 2025.04.30

맥각(麥角, Ergot)이란 무엇인가

맥각이라는 이름의 유래 프랑스에서는 곡식 이삭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자라난, 길쭉하고 검은색의 단단한 덩어리를 ‘에르고(ergot)’라 불렀다. 닭발이나 뿔처럼 생긴 이 곰팡이 덩어리는 생김새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이후 영어권에서도 같은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쓰이는 ‘맥각(麥角)’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프랑스어 ergot를 번역해 만든 한자어다. 이후 중국과 한국에도 이 표현이 도입되어 지금까지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의 사용과 의학적 가치맥각은 중세 유럽,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서 여성 질환 치료에 많이 사용되었다.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이 있어 출산을 유도하거나 산후 출혈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는 약재로 여겨졌다. 당시는 분만 중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맥각은 ..

동식물 이야기 2025.04.30

리처드 파인만이 특별한 이유

매사추세츠 월섬, 커넥션 머신 설계 작업 당시의 파인만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1918–1988)은 단순한 천재를 넘어선 인물이었다. 그는 이론과 현실, 학문과 대중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학을 세상에 새롭게 소개했다. 이 글에서는 왜 파인만이 전 세계적으로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는지, 다섯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다. 문제를 푸는 방식이 남달랐다파인만은 문제를 해결할 때 기존의 정석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자전기역학(QED) 문제를 다룬 방식이다. 당시 이 분야는 복잡한 수학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심지어 전문가들조차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파인만은 여기서 복잡한 계산을 단순화하는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고안했다. 이 그림은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직관적..

사소한 이야기 2025.04.29

디스인플레이션: 물가는 오르는데 왜 ‘안정’이라고 할까?

디스인플레이션, 낯설지만 중요한 경제 용어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최근 경제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이는 물가가 계속 오르지만 그 상승속도가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작년에 비해 물가가 덜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그리고 디스인플레이션 ● 인플레이션(Inflation): 물가가 전반적으로 계속 오르는 상태. ● 디플레이션(Deflation):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상태. ●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물가는 여전히 오르지만 상승률이 점점 낮아지는 상태 예를 들어, 2023년에 물가가 5% 올랐고, 2024년에 3% 올랐다면, 이는 디스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오르는 추세는 유지되지만 속도가 줄어들었..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의료 현장을 디지털로 복제하다

목차1. 디지털 트윈, 현실을 재현하는 기술의 진화 2. 의료분야에서 빠르게 확산된 이유 3.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확산 중인 디지털 트윈 4. 디지털 트윈의 미래 디지털 트윈, 현실을 재현하는 기술의 진화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현실세계의 사물이나 시스템, 그리고 사람의 신체까지도 디지털 환경에 정밀하게 복제하여 실시간으로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다. 단순한 3D 모델링을 넘어,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한층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처음에 제조업과 항공우주 산업에서 설비의 고장 예측이나 운영 효율성 개선을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최근에는 의료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며 주목받고 있다. 의료분..

순한맛 콘텐츠, 디지털 시대의 생존 전략

피로한 시대, 자극을 거부하다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다. 누군가는 더 세게, 더 강하게 말하며 관심을 끌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모든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순한맛 콘텐츠는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처음엔 단순히 부드럽고 편안한 콘텐츠로 보였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생존전략이 숨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힐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철저히 계산된 선택이다. 순한맛, 감정의 피난처이자 전략순한맛 콘텐츠는 자극을 피한다. 논란이 될 만한 주제를 건드리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만을 다룬다. 귀여운 동물, 잔잔한 자연, 따뜻한 일상. 이런 콘텐츠는 편안함을 주지만 그 본질은 갈등을 피하고,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에 가깝다. 과도한 자극과 갈등으로 피로해진 대중..

휴리스틱(heuristic), ‘발견적 방법’이라는 사고의 지름길

우리는 왜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풀고 싶어할까사람은 누구나 선택 앞에 선다. 매일같이 크고 작은 결정을 반복하고, 그 결정들이 모여 삶의 방향을 만든다. 그런데 이 모든 결정을 하나하나 깊이 따져보며 내릴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우리의 인지 능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결국 인간은 복잡한 문제를 더 단순하게, 그리고 더 빠르게 풀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휴리스틱(heuristic), 우리말로는 발견적 방법이라 불리는 것이다. 생각의 두 얼굴, 시스템 1과 시스템 2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두 가지 체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인 사고, 즉 ‘시스템 1’, 다른 하..

정상성 편향(Normalcy Bias), 재난 속에서도 평온을 찾으려는 마음

위기 앞에서 멈추는 심리우리는 재난을 맞닥뜨렸을 때 본능적으로 도망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공포반응이 아니다. 바로 정상성 편향(Normalcy Bias)이라는 심리 때문이다. 정상성 편향은 재난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이 평소처럼 흘러가리라는 믿음이다. 사람들은 눈앞의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기보다, 익숙한 일상의 틀 안에서 해석하려 한다. 익숙함 속에 머문 사람들정상성 편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여러 재난 속에서 드러난 구체적 사례를 보면 명확해진다.—● 1999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는 초대형 토네이도가 경고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시속 500킬로미터에 달하는 강풍, 그리고 13분 전 발..

남극대구(칠레농어)의 인기, 로스해를 위협하다

목차1. 위기의 바다, 로스해 2. 남극대구, 칠레 농어라는 이름의 고급 생선 3. 로스해 생태계의 균형을 흔드는 위협 4. 로스해를 지키려는 과학자들의 노력 5. 마무리하며 1. 위기의 바다, 로스해지구에는 여전히 손대지 않은 마지막 바다가 존재한다. 남극대륙 서쪽에 위치한 로스해(Ross sea)는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원시 해양생태계다. 이곳은 펭귄, 물범, 크릴, 고래, 그리고 남극대구와 같은 생물들이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제 이 바다에도 변화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상업적 어업 선단이 남극대구를 잡기 위해 로스해로 몰려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 인간의 식탁 위에 오르는 한 어종에 대한 수요 증가가 바다 전체의 균형을 ..

동식물 이야기 2025.04.27

디지털화의 문제점: 에너지 소비, 빅테크 독점, 그리고 대안

목차1. 끝나지 않은 디지털 혁명 2. 데이터의 그림자: 서버가 삼켜버린 전기 3. 사이버스페이스의 제국: 소수의 손에 쥐어진 인터넷 4. 디지털화의 신화: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 5. 사람을 위한 인터넷: 대안은 가능한가 6.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1. 끝나지 않은 디지털 혁명우리는 디지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클라우드, 인공지능, 메타버스. 이름만 들어도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듯하다. 그러나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인간은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일하며, 잠시 숨 고를 틈을 찾는다. 지난 30년간 디지털 기술이 쏟아져 나왔지만 우리의 삶은 과연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뀌었는가? 인간은 여전히 도구를 사용한다. 다만 이제는 이 도구들이 디지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기록하고..